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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서 부모가 의사면 자녀가 의사 될 확률 24배↑
능력주의 속살 속에 깃든 계급주의…신간 '계급 천장'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국 주요 방송사인 6TV에 근무하는 마크는 엘리트의 전형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런던 최고 사립학교를 나왔고,개천용라이트하우스 투자 파트너 홈페이지 옥스퍼드대를 졸업했다. 부모님 지인 덕에 뉴욕에서 인턴십도 거쳤다. 6TV에서 승진은 가팔랐다. 39세에 불과하지만, 요직인 시사 부장 자리에 올랐다. 수천만 파운드의 예산을 좌지우지하고, 수많은 독립TV 제작자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는 학벌, 강한 직업윤리, 일에 대한 감각 등 성공할 만한 요건을 두루 갖췄다. 그중에서 마크가 꼽은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그가 "발전할 기회와 빛을 발할 기회"라고 말한 "발판"(platform)이다. 이는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과 출신 계급을 의미한다.
샘 프리드먼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와 대니얼 로리슨 미국 스워스모어칼리지 교수가 함께 쓴 '계급 천장'(The Class Ceiling)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계급 문제를 정조준한 묵직한 저서다.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자수성가를 의미하는 이른바 '개천용'이 된다고 해도 크게 성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면 명문대 학벌을 얻기도 어려울뿐더러 설사 얻는다 해도 천장이 막혀 있어 높이 올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성이 일정 수순 이상의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의미하는 '유리 천장' 개념을 저자들이 계급에 적용한 이유다.
책에는 이를 규명하는 수많은 통계가 나온다. 저자들은 영국 최대 고용 조사인 노동력조사(LFS)를 통해 확보한 10만8천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이중 엘리트 직종 종사자 1만8천명의 계급·배경 데이터를 중심으로 살폈고, 방송, 회계, 건축 등에 종사하는 엘리트 17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광고그 결과,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었다. 특권층 출신이 노동계급 출신보다 엘리트 직종에 종사할 확률이 약 6.5배 높았다. 그중에서도 의료계가 독보적이었다. 특권층 출신은 노동 계급 출신에 견줘 의사가 될 가능성이 12배 더 높았다. 건축 분야는 7.5배 더 높았다.
특권층에선 직업 대물림도 두드러졌다. 부모가 의사인 사람은 부모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의사가 될 확률이 무려 24배나 높았다. 변호사의 자녀가 법조인의 될 가능성은 17배, 방송 분야 근무자의 자녀가 방송계에 종사할 확률은 12배 더 높았다.
저자들은 공학, IT 같은 비교적 신생 분야보다 "전통적 특권 직종인 의료, 법률, 건축, 언론계 전문직은 특권층 출신의 비율이 특히 높다"고 설명한다.
소득에서도 차이가 났다. 노동 계급 출신은 같은 일을 하는 특권층 출신 동료보다 평균 16% 더 적게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격차가 가장 큰 금융과 법률 분야의 경우 연평균 3천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공정과 실력을 중시하는 능력주의가 신자유주의 밀물 속에서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사실 능력주의라는 것도 그 속살을 까보면 계급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여기서 계급이란 부모의 재산뿐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문화 권력, 그러니까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비투스(습속)까지를 포함한다. 억양과 어조, 몸짓, 자세, 패션 감각, 세련된 입맛과 콘텐츠에 대한 문화적 취향과 같은 것들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에서 언급한 '냄새'도 일종의 아비투스다.
저자들은 "문화 자본의 상속은 사회 자본, 경제 자본의 대물림보다 더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계급 특권을 재생산하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아비투스 속에서 자란 특권층들은 또 다른 특권층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유머, 관심사, 취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위 중간 계급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런 동종 선호에 기초한 유대는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책은 과거와 같은 '카스트'는 없어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은밀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숫자를 들이대며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랄하면서도, 뼈를 때린다. 이 책의 정수는 책과 전혀 관계없지만 영국 영화평론가 애넷 쿤이 남긴 유명한 말과 맞닿아 있다.
"계급은 옷 아래, 피부 아래, 반사신경 속에, 정신 속에, 존재의 중심부에 존재한다."
사계절. 홍지영 옮김. 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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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저작권자(c) 연합뉴스,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2024/03/08 11:0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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